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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4 한국족보유네스코등록보고대회_연주현씨문중발표문
작성자관리자(hyuncnet@naver.com)작성일2025-11-05조회수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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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족보유네스코등록보고대회_연주현씨문중발표문_251104>




 

1. 시조 및 중시조 등 소개


 연주현씨(延州玄氏)의 본관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평안북도 영변입니다. 영변의 옛 지명이 延州입니다. 始祖 현담윤 공이 고려 명종4년(1174년)에 조위총의 난 때 공을 세워 문하시랑평장사에 오르고 연산군(延山君)에 봉해진 이래로 관향을 연주로 900년을 내려오고 있습니다. 고려사 현덕수 열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덕수 공은 현담윤 시조의 큰아들로 고려조 병부상서를 지내신 분입니다. 


 현담윤 공의 후손들이 세거지 명을 따서 성주(星州), 창원(昌原), 순천(順天), 천령(川寜) 등 여러 개의 본관으로 갈라져서 지냈습니다. 성주(星州) 현씨는 시조 담윤 공의 장남 덕수 공을 중시조로, 창원(昌原) 현씨는 시조 담윤 공의 3남 대사공 덕유 공을 중시조로, 순천(順天) 현씨는 덕수 공의 차남인 3세조 영동정 원고(元羔) 공을 중시조로, 천령(川寜) 현씨는 9세조 여주목사 수 공을 중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문헌에 의하면 본관이 106본까지 전해진다고 합니다만 1747년(영조 23년, 정묘년)에 대동보 초간본인 정묘보를 편수할 때, 당대의 성리학자인 구암 윤봉구(久菴 尹鳳九), 도암 이재(陶庵 李縡), 남당 한원진(南堂 韓元震) 등에게 문의하고 자문을 구해 本을 延州로, 시조는 현담윤 공으로 하는 연주현씨(延州玄氏)로 단일화했고 1982년 임술보(壬戌譜) 때도 문중(門中)의 합의에 따라 본관을 연주(延州)로 통일했습니다. 아직도 30여 본의 다른 본관이 현존하고 있어서 대종회에서 본관 정정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 인구수, 주요 세거지 소개


 1930년 국세조사 당시 연주현씨 비율은 남한 30%, 북한 70% 정도로 남한에 비해 북한에 비교적 많이 분포했으며, 주로 본향인 평안도 지방에 거주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현씨(玄氏) 성을 가진 사람들의 수는 88,824명입니다. 전국 인구의 약 0.2%를 차지하는 귀성(貴姓)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일원에 약 45%가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특히 제주도에는 약 4천 호가 집성촌(集姓村)을 이루고 있습니다. 

   

3. 지파, 분파 등 문중 현황 소개


 현재 성주 목사공파에서 사인공파까지 24개 계파가 있습니다. 시조 현담윤 공의 묘소는 영변에 있습니다만, 남해현령공파가 예천의 영모사에서, 그리고 전주판관공파 연숙공문중이 천안 경헌사에서 매년 시조 시향을 모시고 있습니다. 고려 삼별초 난에 공을 세운 5세조 도원수 현문혁 장군의 시향은 전객령파 종친회가 연천에 있는 사당 남송사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조선 초 예의판서를 제수받으신 7세조 현옥량 공의 묘소가 남한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묘소입니다. 남해현령공파 예천종친회에서 매년 시향을 모시고 있습니다. 9세조 현사경 공을 중시조로 모시는 제주목사공파는 전체 현씨 인구 약 8만여 명 중 약 2만 5천 명으로 가장 큰 계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매년 시향을 지내고 격년으로 친족한마음대회를 여는 등 모범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4. 문중 대표 인물 소개


 9세조 현석규 공은 조선 전기 평안도 관찰사, 이조판서, 형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유자광, 임사홍 등과 펼친 정치적 논쟁으로 회자되는 분입니다.


 현상벽(玄尙璧) 공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 권상하의 제자인 강문8학사의 한 분으로 조선 유학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습니다.


 현석문(玄錫文) 공은 한국 천주교 초기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기해일기 작성에 참여했으며, 1846년 병오박해 때 김대건 신부와 함께 순교하여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현씨는 비교적 인구가 적은 성씨이지만, 각 시대마다 학문, 예술, 독립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배출했습니다.


 현채(玄采)는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계몽운동가로 역사교과서 <동국역사>, <동국사략> 등을 편찬하고 <월남망국사>, <만국사기>, <유년필독> 등을 저술한 교육인, 역사학자, 서예가입니다.


 사실주의 소설가 현진건(玄鎭健)은 《빈처》, 《운수 좋은 날》 등 작품을 남겼으며, 언론인으로서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입니다. 현진건의 숙부 현양운은 우리나라 최초의 축구 선수입니다. 현진건의 당숙 현희운(필명 현철)은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연극인, 극작가, 신극운동가입니다. 현진건의 셋째 형 현정건(玄鼎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교육자이며 독립운동가입니다. 


 보성학교 교장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대한군정서 총재를 역임한 현천묵, 대한통의부법무위원장을 역임한 현정경, 상해 임정 군사학편수위원 현익철, 임시정부 외무부 및 내무부 차관을 역임한 현순, 고종의 밀사로 대한제국의 중립화를 추진한 현상건 등도 독립운동가로 활동했습니다.


 3.1 운동 48인 민족 대표 중 한 명인 현상윤(玄相允)은 교육가, 사학자, 독립운동가로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했습니다. 서양 음악을 한국에 도입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작곡가 현제명은 서을대 음대학장을 역임했습니다. 가수 현인은 본명이 현동주입니다. 


 의사이자 교수인 현봉학(玄鳳學)은 한국전쟁 당시 흥남 철수 작전 중 피난민 약 10만 명을 철수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한국의 쉰들러'로 불렸습니다.


 1953년 연주현씨종친회를 창립한 초대 대종회장 현석호는 제2공화국에서 내무부장관, 국방부장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제3대 대종회장 현승종 박사도 제6공화국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하셨습니다. 


 현오봉 국회의원, 제6대 대종회장 현경대 국회의원, 주미대사 현홍주 등이 대표적인 정계 인물입니다. 


 ‘순이삼촌’의 소설가 현기영, 현길언, 서예가 소암 현중화, 현대그룹 회장 현정은(玄貞恩), 삼성 비서실장 현명관, 탁구선수 현정화, 농구선수 현주엽 등 현대로 오면서 더욱 활약이 많은 현씨 문중입니다.


囗옛 족보 소개 


1) 명칭 : 연주현씨족보(정묘보, 초간본)


2) 발간 연도 : 1747년(영조 23년, 정묘년)/1775년(영조 51년, 을미년) 28년 후 정묘보 증보판 


3) 규격(책수, 페이지) : 4권(卷) 4책(冊). 155페이지. 각 권 26.6cm x 18.7cm


4) 수록 인원수 : 1,500명 정도


5) 출판 형태 : 목판


6) 보존 상태 및 소유형태 : 초간보(丁卯譜, 1747년 刊)는 현재 보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나 초간보를 수정 증보한 보첩(1775년 刊)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실 (분류번호 古 2518-92-3)


7) 발간 경위 등과 서문, 발문 등 소개 : 영조 23년(1747년, 정묘년)에당대 성리학자들의 자문을 통해 本을 延州로, 시조는 현담윤 공으로 통일키로 정하고 대동보 초간본인 丁卯譜를 편수했다. 서문은 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대사헌, 공조판서를 역임한 구암 윤봉구가 작성했다.


8) 특징 : 시조(始祖)의 체계와 본관 통합의 당위를 당대(當代) 거유(巨儒)들과 편수자의 질의·답변으로 정리한「문목(問目)」을 수록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囗 천령현씨세보 


1705년(숙종32년). 1725년, 1782년 발간한 천령현씨세보가 있지만 사본만 연주현씨대종회 사무실에 보관되어 있다. 원본은 중랑장공파(천령현씨) 장손이 보관하고 있는 걸로 전해진다. 소재지를 파악 중이다. 사본에는 1705년(숙종32년) 한성판윤 현달원이 쓴 서문, 1725년 시흥현감 현제강이 쓴 서문, 1782년 활인별제 현계환이 쓴 서문과 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천령현씨세보 편찬사 일람표>


* 천령현씨세보(1)


- 편찬시기 : 1705년(을유년, 숙종 32년)

- 序文 작성자 : 현달원(玄達源, 19世, 1641-1720), 한성판윤, 통훈대부, 귀후서(歸厚署) 별제(別提) 

- 서문 요약 : 10대조 휘 수(守) 공(公)이 전조(前朝)에서 영동정(令同正)의 벼슬을 했다. 갑술년(甲戌年, 1694년)에 귀후서(歸厚署) 별제(別提)의 직임으로 여주 북면 ‘한거리(漢巨里)’에 예장(禮葬)을 모셨다. 천령 후손 ‘현원산(玄元山)’의 묘갈이 있고, 그 한 등성이(一岡) 안에도 큰 무덤들이 많다. 그 산자락 아래 들판이 예부터 현씨 문중의 옛 집터였다. 을묘년(乙卯年, 1675년)에 본부(本府)의 좌수(座首)로 있는 동성(同姓)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족보를 만들려 했다가 여의치 않아 돌아갔다고 들었다. 그 뒤에 그 좌수의 이복 아우로 출가한 승려가 우리 조상께 와서 말하기를, “그의 본관(本貫) 역시 천령(川寧)입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정묘년(丁卯年, 1687년) 가을 중순, 후손 현현지(玄賢志)가 승려의 신분으로 와서 우리 조상께 “제 본관 또한 천령입니다.”라고 고하였다. 우리 현씨(玄氏)의 조상께서는 예전에 북도(北道) 영변(寧邊)에 계실 때, 선전관(宣傳官)으로서 죄를 얻어 유배되는 사람들(徒罪)을 인솔하는 일을 맡으셨고, 그 뒤로 북쪽 지방(北陸)에 그대로 거주하게 되었다. 자손이 매우 번성하였다. 선대 묘소가 경기(畿甸) 동쪽 길의 ‘답동(畓洞)’에 있었다 하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우리 오대조(五代祖) 증 판결사공(贈判決事公, 14세 수겸壽謙)께서 처음으로 양주(楊州) ‘별비곡(別非谷)’에 묘지를 정하여 장사하셨고, 육대조 이상 선대의 무덤들은 예로부터 답동(畓洞)에 있었다고 들었다. 같은 성의 3촌 백모의 남편인 첨사(僉使) 허욱보(許頊甫)의 선산도 같은 능선(同一岡)에 있다고 한다. 내가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 望七(65세)에 족보를 정리하다. 을유년(乙酉) 10월 상순, 불초한 손(孫) 달원(達源) 통훈대부, 전(前) 귀후서(歸厚署) 별제(別提) 삼가 쓰다.



* 천령현씨세보(2)


- 편찬시기 : 1725년(을사년, 영조 원년)

- 序文 작성자 : 현제강(玄悌綱, 20世, 1665-1735), 어의, 통훈대부, 시흥 현감

- 서문 요약 : 선친(달원, 19세)께서 을유년(乙酉年, 1705년)에 두루 물어 자료를 모아 족보를 편찬하시고, 또한 서문을 지어 그 뜻을 기록하셨다. 이십 년 동안 후손 가운데 이를 덧붙여 기록한 이가 없었으므로, 이제 다른 족보의 예를 참고하여 바로잡고자 한다. 을사년 봄에, 불초한 아들 통훈대부 겸 시흥 현감 제강(悌綱)이 삼가 기록하다.



* 천령현씨세보(3)


- 편찬시기 : 1782년(임인년, 정조 6년)

- 序文 작성자 : 현계환(玄啓桓, 22세손, 1732~1800), 역과교수(譯科 敎授), 활인별제(活人別提)

- 서문 요약 : 증조부 별제(別提)공께서 비로소 족보를 모아 편찬하시어 근거가 생겼다. 나의 선친께서 이를 근심하시어 옛 자료를 다듬고 새 명부를 거두어 겨우 초고를 이루셨으나, 불행히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불초한 내가 붓을 잡고 통곡하며 말하였다.(중략) 선세(先世)의 비지(碑誌)와 종인(宗人)의 기사(記事), 그리고 연주(延州)의 세계(世系)까지 빠짐없이 싣고, 모두 책 세 권으로 엮었다. 이로써 우리 현씨의 근원과 지파가 펼쳐 보면 환히 드러나고, 조모(昭穆)의 차서(次序)도 바르고 분파(分派)도 분명해졌다. 이는 앞서 별제공께서 먼저 시작하셨고, 선친께서 그 뒤를 이어 정리하신 바를 내가 마침내 책으로 완성한 것이다. 별제(別提)공의 휘는 달원(達源)이요, 광국 원종공신 무(武)공의 4세손이다. 임인년(壬寅) 12월 보름 지난 날(既望), 불초한 외로운 손자 계환(啓桓)이 삼가 적다.



囗 연주현씨대동보 편찬사


 1수보 정묘보 편수 이후 1799년(정조23년)에 2수보인 기미보부터 2017년 9수보인 정유보까지 모두 9차례 간행했으며, 9수보는 책자 대신 전자족보로 편수하여 종원들이 온라인으로 열람, 등재, 수정할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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